
좌) 연평공립어린이집 ‘꼬마 과학자’들이 4차시의 그림자 놀이를 하는 사진 / 우) 공립영흥어린이집 원아들이 온라인 수업에서 손전등으로 직접 만든 1차시 ‘깜깜상자’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진
배움에 섬은 없다!
- 도서지역 유아과학교육 격차해소를 위한 대학-어린이집-가족센터 협력 모델 제시
서해 최북단 백령도, 북방한계선(NLL) 인근의 연평도·대청도, 뭍과 다리로 이어진 영흥도, 그리고 덕적도와 자월도. 대부분 배로 몇 시간씩 떨어진 섬의 어린이들이 9월 한 달 동안 매주 화요일 오전과 오후 같은 교실에 모였다. 교실은 노트북 화면 속에 있었다.
인천대학교(총장 이인재) 과학영재교육연구소(소장 한기순)가 운영하는 생활과학교실 인천지역운영센터는 9월 8일부터 29일까지 매주 화요일 4회기에 걸쳐 온라인 유아과학교실 「꼬마 과학자의 비밀 연구소」를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옹진군 관내 어린이집 8곳을 실시간 쌍방향으로 연결했고, 1~5세 원아 59명이 참여했다. 이번 교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인천광역시·인천대학교가 주관했으며, 복권위원회가 후원했다.
□ 섬과 섬 사이, 아이들의 ‘또래 교실’이 사라지고 있다
옹진군은 기초자치단체 전체가 섬으로 이뤄진 지역이다. 인천시는 지난 9월 1일 인천의 섬을 197개(유인도 40개, 무인도 157개)로 최종 확정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옹진군에 흩어져 있다. 섬마다 인구가 나뉘어 있다 보니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려 배울 기회도 그만큼 적다.
섬 지역 교육 인프라의 한계는 여러 차례 보도됐다. 2025년 인천교육통계 기준 옹진군 관내 학교는 31곳으로, 학급당 평균 학생 수가 7~8명 수준에 그친다. 사설학원은 6곳, 강사는 5명뿐으로 인천 전체 학원 수의 0.1% 수준이어서 사교육으로 보완할 기회가 사실상 막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어린이집 사정도 녹록지 않다. 2019년 보도에 따르면 일부 섬의 공립 어린이집은 원장을 포함한 보육교사 1명과 조리사 1명만으로 운영되고, 원아가 2명까지 줄어 옹진군 지원으로 겨우 명맥을 잇는 곳도 있다고 보도됐다.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시설을 보수하려고 수리공을 불러도 연평도까지 오지 않는다”며 섬 지역을 ‘보육 사각지대’라고 표현했다.
이런 여건에서 유아 과학활동은 특히 쉽지 않다. 과학놀이는 직접 만지고 조작하며 교사와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그런데 섬 어린이집은 외부 전문강사를 모시기도, 실험 교구를 갖추기도, 한 반에 또래를 충분히 모으기도 어렵다. 날씨가 나빠 배가 뜨지 않으면 계획한 체험 프로그램이 통째로 취소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 화면 너머로 함께 켠 손전등… ‘꼬마 과학자’들의 4주간 탐구
인천대 생활과학교실은 이 문제를 ‘연결’로 풀었다. 강사가 섬에 들어가는 대신 온라인으로 여러 섬의 어린이집을 한 교실로 묶었고, 실험 재료는 미리 배송해 아이들이 각자 자리에서 손으로 직접 실험하게 했다. 영상을 보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활동을 직접 조작하는 참여형 놀이로 구성하였다.
수업은 오전반(대청·연평·자월·백령 어린이집 원아 28명, 1~4세)과 오후반(덕적·빛누리·영흥·해병대흑룡 어린이집 원아 31명, 2~5세)으로 나눠 회당 50분씩 진행했다. 각 원의 담임교사가 보조 과학자로 현장에서 아이들의 안전과 조작을 도왔다. 4차시 수업은 ‘빛’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단계적으로 넓혀 가도록 구성했다.
1차시에 만든 어둠상자와 2차시의 색 도구를 3·4차시에 다시 쓰도록 설계해, 한 가지 교구를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게 했다. 교구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실과 가정에서 반복해 놀 수 있게 구성해, 50분 수업이 일상 속 탐색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연평공립어린이집 담임교사는 “가운 입고 진짜 과학자가 된 것 같다며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고 말했으며 공립영흥어린이집 김종민 원장은 “일회성이 아닌 4차시까지의 심도 있는 과학적 접근을 할 수 있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국가가 책임지는 기본교육, 출발선은 ‘유아기’부터
교육부 국정과제 101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공교육 강화’는 학교와 지자체가 함께 모든 학생·학부모에게 격차 없는 돌봄·교육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으며, 정부책임형 유보통합과 3~5세 무상교육·보육의 단계적 추진도 포함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5월 발표한 ‘국민주권 정부 1년 교육 분야 성과와 향후 추진계획’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기본교육, 국민이 체감하는 교육강국’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생애 초기부터 교육·돌봄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공정하고 균등한 체계를 만드는 데 정책 역량을 모으고 있다. 국정과제 55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 역시 지역대학과 지역 기관의 연계·협력으로 지역의 교육력을 높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정과제 27 ‘기초연구 생태계 조성과 과학기술 인재강국 실현’도 과학 인재 양성의 뿌리가 과학에 대한 첫 호기심에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업과 이어진다.
운영 구조도 이런 방향을 보여준다. 대학은 전문 콘텐츠와 강사를, 옹진군 가족센터는 각 어린이집과 원활한 소통창구를, 어린이집 교사들은 현장 보조를 맡았다. 대학·가족센터·유아교육기관이 역할을 나눈 ‘지역 연계형 과학교육 모델’로, 지역 안의 자원을 엮어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선 사례라 할 수 있다.
□ 2006년부터 이어온 인천대 생활과학교실, “과학복지에 소외 지역은 없다”
생활과학교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인천광역시·인천대학교가 주관했으며 복권위원회가 후원하는 과학기술 분야 교육복지 사업으로 과학기술진흥기금과 복권기금으로 운영된다. 인천대학교는 2006년부터 인천광역시와 함께 인천지역운영센터를 맡아 왔다. 2006년 주민센터 5곳·복지관 1곳에서 시작해 2010년 학교로 찾아가는 과학교실로 확대했고 2016년 가족·유아·장애인·실버 과학교실로 대상을 넓혔다. 2020년에는 비대면 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과학교실을 도입했으며, 2022년 이후 소외 지역 프로그램 확대와 특수교육 전담 프로그램 운영에 나섰다.
인천대 과학영재교육연구소는 이렇게 쌓아 온 온라인 운영 경험과 유아 과학 콘텐츠를 도서 지역 기관 연계 모델로 발전시켜, ‘보편적 과학복지’라는 사업 취지를 섬마을 어린이집까지 넓혔다.
한기순 인천대 과학영재교육연구소장은 “과학 인재는 어느 날 갑자기 길러지지 않는다. 손전등 하나로 어둠을 밝히며 ‘왜?’라고 묻는 유아기의 경험이 미래 과학자의 첫걸음”이라며 “사는 곳이 섬이라는 이유로 그 첫걸음이 늦어지지 않도록 한국과학창의재단 생활과학교실 사업을 통해 인천 곳곳의 소외 지역까지 과학의 즐거움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번 프로그램 운영을 바탕으로 도서 지역 유아를 위한 연계형 과학교실을 계속 넓혀 갈 계획이다.